양준일의 근황을 포스팅하는 이유는 리베카, 가나다라마바사 등의 곡으로 활동했던 양준일이 최근 유튜브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팬카페까지 활발합니다.
몇 달 전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기 전에 유튜브로 우연히 봤다가 외모나 스타일이나 풍기는 분위기가 마치 요즘 시대의 모델이나 아이돌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잠시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보게 되었는데 역시 보는 눈은 다 비슷비슷 한가 봅니다.
90년대~20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준일이라는 사람의 근황이 궁금해졌습니다.
리베카 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양준일의 대표곡이 되어버린 리베카가 수록되어있는 양준일의 1집입니다.
1집은 리베카 말고 다른 곡들은 그저 그런 그 시절 흔한 발라드들로 구성돼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양준일의 대표곡 격인 리베카는 좀 다릅니다.
1991년 대한민국에서 안무 퍼포먼스에 의자를 사용한다? 그의 선구자적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가 춤을 잘 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뭔가 공기인형처럼 흐느적거리는 게 기본기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될 부분은 그의 데뷔시기는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빨랐습니다.
그의 데뷔 전에는 이런 음악은 대한민국에 전무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는 확실히 감이 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음악은 마찬가지고 사실 그의 외모 덕에 더 돋보이는걸 수도 있지만 거의 패션은 요즘 스트릿 패션이라 불리는 것들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도는 얘기이긴 하지만 활동 당시 옷을 구하러 곳곳을 직접 누비는 양준일을 본 적이 있다는 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감각이나 스타일이 당시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너무 빨랐던 걸까요? 유튜브 댓글을 확인해보면 당시 반응은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기생오빠라는 평이 많았다고 합니다.
뭐 그분들도 지금은 몰라봐서 죄송하다고 댓글 달 정도니 시대를 앞서 갔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여담으로 양준일이 리베카의 가사에 이덕화라고 부른 영상이 남아 있는데 당시 한국에 남아 있던 유교적인 사상 탓에 게이로 오해받아 방송정지를 당했다던가 어른인 이덕화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서 방송정지를 당했다던가 하는 루머가 있었다고 합니다.
양준일이 그 영상을 지금 본다면 좀 창피할 수도 있겠지만 그 영상이 양준일 외모의 리즈 시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앨범에서 그는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가나다라마바사, Dance with me 아가씨 입니다.
이 앨범은 무려 뉴 잭 스윙을 한국에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뉴 잭 스윙은 요즘 젊은 층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는 장르입니다.
저는 듀스나 업타운쯤에서 한국 뉴 잭 스윙이 시작됐다고 봤는데 실질적인 시작은 양준일이었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운드적인 면에서 특히 Dance with me 아가씨에서 꽤나 완성도가 있습니다.
사실 가나다라마바사는 번안곡이고 리베카도 표절 의혹을 크게 받았다고 하지만 교포가수인 그가 불모지에 새 장르를 가져온 건 변함없습니다.
여담으로 양준일은 90년대 활동 당시 한국말에 매우 서툴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제로 신동엽, 김원준 등과 같이 무대를 섰는데 말을 못 하는 건지 당황한 건지 자기 대사를 한마디도 안 하는 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그 후 양준일은 10년 가까이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충격적인 모습으로 컴백하게 됩니다.
V2와 판타지 입니다.
꽃미남 도련님이 벌크업 하고 조폭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쌍꺼풀 수술까지 하시고 말입니다.
쌍꺼풀 수술은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깡 커플 없는 눈이 매력인 그였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V2를 양준일의 새로운 가명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V2는 같이 춤을 추는 여자 멤버 두 명까지 포함한 그룹의 이름이고 그는 V2의 멤버 J.I.Y입니다.
J.I.Y은 준일 양의 이니셜인 것 같습니다.
이 시절 인터뷰를 보면 그가 한국을 떠났던 이유가 밝혀지는데 리베카의 표절소송 때문이 다라는 등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교포인 그의 취업비자가 만료되어 쫓겨나듯이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 시절엔 요즘 말로 표현하여 밈(meme)적인 요소들이 많은데 이 시절의 양준일이 우습다는 게 아니라 그냥 보다 보면 웃긴 게 매력적입니다.
가만히 관찰해보면 양준일은 계속 춤을 추고 있긴 한데 정해진 안무는 후렴에서 하늘 찌르기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프리스타일입니다.
가사도 참 재미있는데 '그녀가 떠나는 꿈이 었어 빨래해야 한다며 기차 타고 떠났어'라는 가사를 테크노 음악에 차용했습니다.
예나 이때나 시도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없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때는 파라파라 댄스라는 춤을 한국에 가져오고 싶다는 인터뷰 영상이 있는데 이때도 뭘 가져오긴 했지만 지금은 그 춤 자체가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인터뷰 영상을 보면 놀라운 점이 양준일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데 10년 동안 한국말이 늘은 건지 원래 못한다는 게 루머였던 건지 참으로 미스터리 한 인물입니다.
이렇게 10년 만에 복귀하였지만 그는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해 지금까지 그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양준일 근황 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그를 접한 많은 대중들이 그의 팬이 되고 그의 근황을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제가 찾는데 까지 찾아보았습니다.
일단 2002년에 그의 팬클럽과 함께 있을 때 찍힌 사진이라는데 리베카 활동 당시와 비교하면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그래도 멋있습니다.
그동안 간간히 무한걸스나 여타 TV 프로그램에 그의 근황이 궁금하다는 내용들이 방영되곤 했습니다.
아주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기사로는 2010년에 경기도 일산에서 영어교육 전도사로 변신했다는 기사가 있는데 영어강사로 활동하던 그가 프로그램을 만들고 단어를 캐릭터화 하는 그림 작업을 아내가 맡았다는 걸 보니 결혼은 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이 남아 있는 마지막 소식이고 그 후 이렇게나 인터넷에서 핫함에도 아무 소식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주된 의견입니다.
최근에는 이렇게 그가 핫한 인물로 떠오르면서 미국 한인 라디오에 그를 찾는다는 사연까지 소개되었습니다.
또한 다음 카페 '가수 양준일 팬클'이라는 카페는 2000년도에 개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현재 최근 글이 가득합니다.
양준일의 어린 시절 사진인데 지디 도플갱어로도 유명해진 그입니다.
저도 근황 글을 쓰며 그를 알아가며 그의 팬이 된 것 같습니다.
가수 양준일 님 어디서 뭐하고 계십니까 팬들이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